박유산과 처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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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산은 가조면 동례리와 남하면 지산리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해발 713m로 그 주령이 남북으로 뻗어 있어서 남하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박유산은 말뚝같이 우뚝 솟았다 하여 원래는 말뚝산이라고 불렀는데 신라 말기 때 박 유가 이곳에 와서 은신하면서 살았다 하여 박유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박유는 신라 말기 때의 사람으로 경순왕이 나라를 왕건에게 바치자 고려조 벼슬 하기를 거부하고 이곳에서 은신하며 살았는데, 그는 학문이 뛰어나고 지조가 굳은 인물로서 왕건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산속에 숨어 암자를 짓고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오래전까지 박 유 처사가 살았던 암자가 산속에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가 공부를 했다는 큰 바위를 처사 바위 또는 책상 바위라고 합니다. 지금도 이 바위에는 누가 새겨 놓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처사 바위'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지방에 오랫동안 가뭄이 들고 비가 오지 않으면 이 박유산에 올라 꼭대기를 파고 불을 지피면 비가 온다고 하여 사람들이 신비한 산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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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055-940-3413)
최종수정일
2015-02-01 0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