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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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안음현(위천)사람으로 고류 우왕 14년(1388)에 왜구가 쳐들어와 그의 아버지를 잡았을 때 반전은 은덩어리와 은띠를 갖고 적에게 가서 아버지와 바꾸기를 간청하여 아버지를 구출해 왔습니다. 반전에 관한 기록이 고려사 열전 34권 효우편 반전기와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1권에 나와 있으며 장풍 근처 바위에 ‘효자 반전 구거 동문(孝子 潘琠 舊居 洞門)’이란 음각 글씨가 바위에 있다고 안의읍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진 최 씨

거창읍 절부리 사람으로 거창부 여지승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녀 고려 최 씨는 낭장 김순의 아내다. 우왕 6년(1380) 7월에 왜구가 거창현을 노략질하고 최 씨를 붙잡아 욕보이려 하였다. 최 씨는 항거하며 따르지 않고 죽었으니, 그 마을을 ’절부리‘라 하였다.’ 또 김영선의 정려기에는 ‘왜구가 노략질을 하여 최 씨의 집에 들어와 부인을 욕보이려고 유방을 잡으니, 절부가 칼로 유방을 잘라 땅에 던지며 꾸짖고 굳게 항거하다 혹독하게 죽었다.’고 되어있습니다.

박문진

박문진은 아버지가 병이 나서 4년 동안 자리에 눕자 항상 곁에서 간병을 하였고 의원이 호랑이 뼈 기름이 좋다고 하자 늘 목욕하고 기도하니, 어느 날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있어 잡아다가 약으로 해 드리고 아버지의 병을 고쳤습니다. 1893년 고종 때 정려를 내렸고, 1898년 띠밭마 마을에 정려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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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055-940-3413)
최종수정일
2018-02-27 09:3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