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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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면(主尙面)

본 군의 중앙부에 자리하며, 조선시대에는 동쪽을 지상곡면(只尙谷面)이라 하여 성기역리(星奇驛里), 장생동리(長生洞里), 고대리(古大里), 보광리(寶光里), 도평리(道坪里) 등 5개 리로 나누고 면사무소는 도평리에 두었다. 서쪽은 옛 거창군의 큰 골짜기라 이르는 주곡면(主谷面)이라 하고, 연제리(連梯里), 완계서원리(浣溪書院里), 완서리(翫逝里), 오산리(烏山里), 오리동리(梧李洞里)등 5개 리로 나누고, 연제리에 면사무소를 두었다가, 1913년에 두면을 합하여 주상면이라 했다. 연제리에 있던 면사무소를 1920년에 도평리에 옮겼다. 지금은 도평리, 연교리, 내오리, 완대리, 성기리, 거기리, 남산리 등 7개 리로 나누었다.

도평리(道坪里)

도평 1구의 도평과 봉황대 2개 마을, 도평 2구의 상도평 등 3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2006년 8월 14일 도평1구를 도평(道坪)으로 도평2구를 상도평(上道坪)으로 변경 하였다.

  • 도평(道坪, 뒤평), 봉황대(鳳凰臺) : 큰 길 뒤에 있는 들이라 후평(後坪), 뒤평이라 했으며, 고려 때 박첨지(朴僉知)가 여기서 두문수도(杜門修道) 하였으므로 도평(道坪)이 되었다고 한다.
  • 봉황대(鳳凰臺) : 본시 황산(黃山)이라 하다가 15세기 중엽 선산 영봉리(善山 迎鳳里)에서 옮겨온 선산김씨들이 누대의 묘를 들이고 고향을 기려서 새봉자를 넣어서 봉황대라 이름 지었다. 또 세산과 두 물이 어울리는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경치 좋은 곳이라, 중국의 봉황대 이름을 빌린 것이기도 하다.
  • 상도평(上道坪) : 도평마을 위쪽에 자리하며, 3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에 있다. 임진왜란 때 주상면 남산리에서 평산신씨가 옮겨와서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연교리(連橋里)

연교리에서 고제면 삼봉산(三峰山)까지 북쪽으로 트인 골짜기를 심원동(尋源洞)이라 한다. 옛날 큰길의 두 다리가 이어져 있으므로 연제리(連梯里)라 하고, 지상곡면의 면사무소가 생기면서 착실한 인심에 맡긴다는 뜻에서 임실(任實)이라 불렀다. 연교1구에 마을 가운데 도랑을 경계로 상임실(上任實), 하임실(下任實), 연교2구에 막터(幕基), 서잿골(書齋谷)등 4개 마을이 있다. 2006년 8월 14일 연교1구를 임실(任實)로 연교2구를 연교(連橋)로 변경 하였다.

  • 상임실(上任實), 하임실(下任實) : 300여년 전에 경주 김씨가 마을을 이루었다 하며 부자가 많이 산다고 "부석마"라고도 한다.
  • 하임실(下任實) : 아래임실, "이음다리"라 한다.
  • 막터(幕基), 서잿골(書齋谷) : 오무(내오산)의 청도 김씨들이 농막을 지었으므로 막터라 하고, 외오산(外鰲山)이라고도 한다.
  • 서잿골(書齋谷) : 약 200년 전 경주김씨의 선조 원추, 극추, 근추 (元樞, 極樞, 謹樞) 세 형제가 시묘하던 자리에 서재를 짓고 임실에서 옮겨 살면서 마을이 생겼다.

내오리(內吾里)

내오리는 내오1구의 오무, 새터 2개마을, 내오2구의 오륫골 등 3개마을로 나누어지며, 내오리 이름은 오무마을 이름에서 생겨난 것이다. 2015년 3월 25일 내오1구를 오무(鼇武)으로, 내오2구를 오류동(五柳洞)으로 변경 하였다.

  • 오무(鰲山), 새터 : 15세기 말 연산조 사화 뒤 김포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청도 김일동(淸道 金逸東)이 고향 청도의 옛 이름인 자라 '오'자 오산(鰲山)으로 바뀌었다. 오산이 오무로 변했으며, 막터를 바깥 오산, 외오라 하고 오무를 내오라고 한다.
  • 새터마을 : 오무마을 북서쪽 내 건너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 오륫골(五柳洞) : 500여년 전 밀양 박씨가 세운 마을이라 한다. 풍수설에 마을 터가 버들가지에 꾀꼬리가 둥지를 짓는 유지앵소(柳枝鶯巢) 형국이므로 이렇게 이름 붙였다 한다.

완대리(玩坮里)

완대 1구인 완수대와, 완대2구인 도동 완대3구인 넘터(완계) 3개 마을로 나눈다. 2006년 8월 14일 완대1구를 완수대(玩水臺)으로, 완대2구를 도동(道洞) 완대3구를 넘터로 변경 하였다.

  • 완수대(玩水臺) : 옛날에는 완서대(玩逝臺)라 하였고, 물을 구경하는 놀이터가 있으므로 완수대로 고쳤다 하며, 300여년 전 엄씨 형제가 마을을 열었다고 전한다.
  • 도동(道洞) : 옛날 조 농사를 많이 하여 "조동"이라 하였고, 300여년 전 영천 이씨 죽헌 이영신(竹軒 李永信)이 단종 복위를 위한 세조 때 사화를 피하여 옮겨 옴으로써 마을이 되었다.
  • 완계(浣溪) 넘터 : 옛 안의군 북하면 모동으로 넘어가는 잿길에 자리하여 "넘터" 월치(越峠)라 하다가 완계서원이 서고나서 완계라 하였으며, 300여년 전 밀양인 박윤보, 재보(朴潤輔, 再輔) 형제가 이룬 마을이라 한다.

성기리(聖基里)

옛날에는 별 '성', 이상할 '기' 성기(星奇)라 하였고, 성기역(星奇驛)이 있었다. 고려 때 주씨(朱氏)가 이룬 마을이라 전한다. 성기1구에 원성기와 홍석동, 성기2구에 신촌, 미기동, 성기3구에 송정, 희동 6개 마을이 있다. 희동에서 고려왕사 희랑대사가 났으므로 성스러운 분의 출신지라하여 성인 '성', 터 '기' 자를 써서 성기(聖基)라 고쳤다 한다. 2006년 8월 14일 성기1구를 원성기(元聖基)으로, 성기2구를 정동(停洞), 성기3구를 송희(松希)로 변경 하였다.

  • 원성기(元聖基), 흥석동(興石洞) : 성기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다. 흥석동(興石洞)은 마을 앞 당산에 있는 넓다란 바위를 흥석이라 하고 여기에 따라 마을 이름이 되었다.
  • 신촌(新村), 미기동(米基洞) : 철종 14년(1863) 9월 큰 불로 마을이 없어지고 500미터 내려와서 새로 마을을 지어 새터라 한다. 미기동(米基洞)은 마을 앞들이 쌀 농사가 잘 되므로 미기들이라 하며 마을 이름도 거기서 생겼다.
  • 송정(松亭, 송지이), 희동(希洞, 희터) : 수원 백씨가 세운 마을로 이 옛날 마을에 무성한 소나무 숲이 있었다.
  • 희동(希洞, 희터) : 신라 진성여왕 3년(889), 희랑대사(希朗大師)가 태어난 곳이다. "희터"라고 부른다.

거기리(渠基里)

거기1구의 거기, 거기2구의 외장포, 내장포, 거기3구의 고대 등 4개 마을로 나눈다. 2006년 8월 14일 거기1구를 거기(渠基)로, 거기2구를 장포(長浦), 거기3구를 고대(古垈)로 변경 하였다.

  • 거기(渠基, 걸터) : 성주 여씨가 이룬 마을이라 하고, 옛날에는 돌이 많으므로 "돌밭"이라 하다가, 개울이 마을을 끼고 흐르므로 "걸터"라 한다.
  • 장포(長浦) : 장승이 있었으므로 "장성불", 노루장자 장포(獐浦)라고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 옮겨온 유성근(柳成根)이 103세를 살고 그 아들도 93세를 살았으므로 장생동(長生洞)이라고도 하였다.
  • 고대(古垈) : 500여년 전 고대라는 사람이 마을을 열었다고 한다. 오래된 터라 고대(古垈), 느티나무가 있었다하여 괴대(槐垈)라고도 쓴다.

남산리(南山里)

남산1구의 남산동, 시락골, 남산2구는 덕동, 서변동, 남산3구의 상보광, 중보광, 개울보광 등 7개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2006년 8월 14일 남산1구를 원남산(元南山)로, 남산2구를 포덕동(飽德洞), 남산3구를 보광(寶光)으로 변경 하였다.

  • 남산동(南山洞), 시락골 : 오랜 옛날에 마을이 생겼다 하여 "묵은터"라고 하며, 파주 염씨가 이룬 마을이라 전한다.
  • 시락골 : 묵은터 북서쪽 1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10 ~ 15호의 작은 마을.
  • 덕동(德洞, 덤마), 서변동(西邊洞) : "덤마"라고도 한다. 도사가 덕유산이 마주 바라보이니 덕동으로 함이 좋다 하여 고쳤다고 전한다.
  • 서변동(西邊洞) : 남산동의 서쪽편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성산 이씨와 평산 신씨가 이룬 마을이라 전한다.
  • 웃보개이(上寶光), 중보개이(中寶光, 서재보개이), 개울보개이 : 이 골짜기에서는 가장 북쪽에 자리하며, 300여년 전 창녕 성씨가 마을을 열었다고 전한다.
  • 중보개이(中寶光, 서재보개이) : 용포 백동근(龍埔 白東根)의 서재가 있었으므로 서재보개이(書齋寶光)라고 하며, 250여년 전에 백상문(白尙文)이 마을 을 열었다고 전한다.
  • 개울보개이 : 개울가에 있으므로 "개울마"라고도 하며 250여년 전 백의립(白儀立)형제가 장수(長水)에서 옮겨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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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면 총무담당(☎ 055-940-7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