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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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조면(加祚面)

석강리(石岡里)

생초, 왕대촌, 평촌, 동산하, 도촌, 재동의 6마을이 있다.

  • 생초(省草) : 임진왜란때 말먹일 풀을 대었으므로 이름 붙었다고하고, "소세"라고 부른다.
  • 왕대(王大) : 전설에 임금이 날 마을이라 하여 이름되었는데 중년에 임금 왕자와 큰대자를 합하여 구경할 롱자로 바꾸어 농촌(弄村)이라 하다가 1995년에 본래대로 되찾았다.
  • 평촌(坪村) : 들가운데 있는 마을이므로 "들마"라 한다.
  • 동산하(東山下) : 동산 밑에 있으므로 "동산밑"이라 부른다.
  • 도촌(道村) : 옛날 왕족들이 살았다 하여 도읍 도자(都) 도촌이라 하던 것을 길 도자로 바꾸었다.
  • 재동(齋洞) : 고려때 마을 앞을 "꽃동마(花동村)"라 하였고, 양씨(楊氏) 부자가 서재를 짓고 살았던 곳을 "서재골(書齋洞)"이라 하였고, 지금의 기리의 장대들, 대초의 사당배미 같은것도 양씨들이 살던 때에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기리(基里)

양기, 음기, 광성, 학산의 4마을이 있는데 양기, 음기를 함께 텃골(基洞)이라 한데서 기리 라는 이름이 생겼다.

  • 양기(陽基) 텃골 : 옛날에는 양기, 음기를 통털어서 기동, 텃골이라 하다가 일제 때 양기, 음기로 나누었다.
  • 음기(陰基), 텃골 : 양기와 함께 텃골(基洞)이라 하여 가남(加南)면에 따랐었다.
  • 광성(廣城) : 옛날에는 "수구막"이라 하였고, 이곳에 조산을 만들면 가조가 빛난다 하여, 온 가조에서 돈을 거두어서 조산을 쌓고 이름을 광성이라 하였다.
  • 학산(鶴山) 서리터 : "서리터" 상현(霜峴)이라고도 한다. 무학대사가 쉬면서 땅세가 학같다 한대서 한자를 따고, 높은 곳에 자리 함으로 산자를 넣어서 학산이라는 이름을 1950년에 청암 이담(靑庵 李淡)이 지었다고 한다.

대초리(大楚里)

대초, 방촌 2마을이 있다.

  • 대초(大楚) : 대추나무가 호수처럼 울창하였으므로 조호(棗湖) 또 "대추마"라 하다가 대초라 한다.
  • 방촌(旁村) : 군위 방이망(方以望)이 1237년에 마을을 이루었고, 방호망(旁湖洞)이라 하다가 1940년에 바꾸었다.

동례리(東禮里)

안금, 중평, 동례 3마을이 있다.

  • 안금(安琴) : 지형이 거문같아서 누를 안, 거문고 금, 안금(按琴)이라 하다가, 편알안 자로 바꾸었다.
  • 중평(中坪) : 박유산 날끝에 있는 마을로서 중촌(中村)과 평촌(坪村)을 합하여 중평이라 한다. 중촌은 동예와 안금의 가운데 있어서 이름되었고, 평촌은 들판에 있으므로 이름되었다.
  • 동례(東禮) : 중종 14년(1519)에 있었던 기묘사화때 사직 벼슬을 버리고 내려온 신윤지(愼胤智)가 은거하면서 예의를 숭상했으므로 예곡 또는 예동(禮谷, 禮洞)이라 하다가 박유산의 동쪽 마을이라서 동유골(東儒谷), 동예라고 했다.

장기리(場基里)

역촌, 부로동, 모덕동, 장기, 원천, 신천 외 6마을이 있다.

  • 역촌(驛村) : 옛날 역이 있어서 이름되었다.
  • 부로동(扶老洞) : 오래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부롯골 이라 한다.
  • 장기(場基) : 1953년까지 가조장이 있었으므로 "장터"라 한다.
  • 원천(源泉) : "샘내", 정천(井川)이라고 한다. 대사헌 증직을 받은 죽산인 전팔고(全八顧)의 호 원천(源泉)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
  • 신천(新泉) : 북같이 생기고 , 둥둥소리가 난다하여 "둥디"이라 하였다.

사병리(士屛里)

병산, 창촌, 당동 3마을이 있다.

  • 병산(屛山) : 마을 뒷산에 장군령(將軍嶺)과 장군 바위가 있고, 장군이 있으면 병사가 있어야 함으로 병산(兵山)이라 하다가, 뒷산이 병풍같으므로 병산(屛山)이라 하였다.
  • 창촌(倉村) : 고려 때부터 가소현 창고가 있었으므로 창마라 한다.
  • 당동(堂洞) : 마을 서쪽 100여m에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당사가 있어서 땅골이라 한다.

마상리(馬上里)

가조면 사무소의 소재지리 옛날 삼 농사를 많이 하여 마촌(魔村) 마치마라고 하였으며, 상마(上馬), 중마(中馬) 1구 중마 2구로 나눈다.

수월리(水月里)

월포, 용당소, 상수월, 용전 외 4마을이 있다.

  • 월포(月逋) : 수월천 소에 달이 비치므로 월포라 이름하였다.
  • 용당서(龍塘所) : 마을 뒤에 용소(龍沼)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상수월(上水月) : 수옥동(水玉洞)으로 불어오다가 일제때 대방곡(大芳谷)과 양동을 합하여서 상수월이다 하였다.
  • 용전(龍田) : 옛날 향교가 있어서 향교말이라고도 한다. 마을앞에 해덕들(海德坪)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 따라 용전이라 한다.

일부리(一釜里)

옛 상가남면에서 가동면으로 바뀌었던 곳으로 도산, 부산, 녹동의 3마을이 있다.

  • 도산(道山) : 도산서원이 있었으므로 이름되었고, 원촌(院村)이라고도 하였다.
  • 부산(釜山) : 옛날 무학대사가 지형이 가마솥설이라 하였으므로 이름되었다고 전한다.
  • 녹동(鹿洞) : 마을 형태가 달아나는 노루가 어미를 돌아보는(走獐顧母)것 같다하여 장항동(獐項洞)이라 하다가 노루메기, 노동(櫓洞)이라고도 불렸으며, 근래 녹동으로 하였다.

도리(道里)

도산동, 화곡, 대학동의 3마을이 있다.

  • 도산당(道山堂) : 도동(道洞)으로 불러 오다가 같은 이름의 마을이 있어서 산자를 넣어서 도산(道山)으로 하였으나 또 같은 마을이 있으므로 도산당으로 고쳤다고 한다.
  • 화곡(禾谷) : 진재해(秦再奚)의 호 벽은(僻隱)을 따라 벽은동이라 하다가 견곡(堅谷)으로 고쳐 부르기도 하였으며, 진씨(秦氏)가 많이 살므로 진자 밑의 벼화(禾)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삼았다.
  • 대학동(大學洞) : 처음에는 "홍강포(鴻江浦)"라 하다가 15세기 중엽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이 평촌의 최숙량(崔淑梁)과 글을 가르칠 때 대학동이라 고쳐 불렀다. 이 마을은 안담, 군담, 양지담 세 담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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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조면 총무담당(☎ 055-940-7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