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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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충사

포충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7호

이곳은 조선 영조 4년(1728)의 무신란 때 순절한 충강공 이술원 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영조 13년(1737)에 세웠다. 이술원 장군은 조선 후기 무신이며 거창 출신으로 영조 4년(1728)에 거창 좌수로 있었다. 안의의 정희량이 난을 일으키자 나아가 대적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생포되어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위치 : 거창읍에서 김천방면 3번국도 약 16㎞ 웅양면사무소 뒤쪽

하성

하성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2호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길이는 1500m, 높이는 2m 정도이며 현재 성안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언제 성을 쌓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백제가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다시 쌓았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이일(李鎰) 장군이 가등청정의 군사와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이 성은 남매가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누이동생이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랐다하여, 여성(女城) 또는 치마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의 주변 곳곳에는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가 있는데, 이것은 성을 쌓다 남은 돌이라고 전해진다.

위치 : 거창읍에서 김천방면 3번국도 신오산마을공원 좌회전 → 신오산마을 회관 → 경덕재 뒤쪽 300m

동호리 이씨고가

동호리 이씨고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조선 순조 때 이진악이 지은 집으로 안채, 곳간채, 사랑채(동호재), 중문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사랑채는 이진악이 할아버지 이지유의 호를 따서 동호재(東湖齋)라 하였다. 안채는 앞면 5칸 반·옆면 2칸 규모이며, 구조는 부엌 1칸·안방 1칸·대청 2칸·건넌방 1칸·반 칸 폭의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방과 대청 앞면으로 반 칸 폭의 개방된 툇마루가 놓여 있고, 뒤로는 반 칸 폭의 벽장과 툇마루가 붙어 있다. 사랑채는 앞면 3칸·뒷면 3칸 규모로 앞면 3칸은 개방된 마루를 두었고, 뒷면 3칸은 방을 들였다. 가운데 방을 앞면으로 약간 돌출시켜 앞면 마루가 가운데 1칸만 반 칸 폭 크기이다. 동호리 이씨고가는 일정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실생활에 맞게 지은, 남부지방 민가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위치 : 거창읍에서 김천방면 3번국도 약 16㎞ 웅양면 동호숲 뒤쪽

거창 영은고택

거창 영은고택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71호

영은정사는 연안이씨의 집성촌인 웅양면 동호마을에 위치하며 도 문화재자료 제 122호인 동호리이씨고가의 아래쪽으로 담장을 공유하는 집으로 1884년 참봉이준학 선생이 차남인 영은 이현석선생에게 분재해 준 집임.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곳간채의 3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서로 긴 장방형의 대지에 대문과 사랑채, 그리고 곳간채를 병렬로 배치하고 사랑채 곳간채 중앙에 두 건물과 직각되게 안채를 배치하였다.

위치 : 거창읍에서 김천방면 3번국도 약 16㎞ 웅양면 동호숲 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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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웅양면 총무담당(☎ 055-940-7410)
최종수정일
2019-07-04 16:3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