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게시판

  • 페이스북 담기
  • 트위터 담기
  • 구글플러스 담기
  • 링크 주소 복사
  • 본문 인쇄
  • 글자 확대
  • 글자 축소

귀농,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자유의 또 다른 이름

작성일
2009-12-22 14:35:27
이름
농업기술센터
조회 :
981
부산 갈매기, 처음엔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던 갈매기가 이제는 ‘부산’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희끗희끗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부산 앞바다를 유유히 누비는 갈매기. 산새농원의 운영자 권영신(48세) 씨를 보며 스쳐간 생각이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그의 모습에 평온함이 묻어났다.

자유에 대한 목마름 하나로

대기업의 보험회사 지점장이었던 권영신 씨는 평소 소신 있는 성격으로 사내에서 인정받으며 지냈지만 내면에서 들려오는 진정한 자유에 대한 목마름에 미련없이 귀농을 선택하게 되었다.
“누구나 사회생활을 할수록 내면에서 끊임없이 울려 나오는 질문들이 생길 겁니다. 그것의 해답으로 저는 자유함을 택하게 되었지요. 구속되고 정형화된 집단 속에서는 더 이상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라며 자신의 귀농에 대한 동기를 밝혔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며 시작된 귀농

권 씨는 귀농을 이루는 첫 번째는 과감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먼저 하동의 밤나무로 덮힌 산 언저리에 땅을 구입하여 자신의 영농 계획에 들어갔다. 가진 거라곤 단지 조금 여유있는 자본금 뿐인 그는 귀농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어 작물 선택에서부터 난관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부산의 생태귀농학교, 거기서 농업에 대한 거리감을 최대한 좁히는 시간이 되었지만 그래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택한 곳이 천안연암대학의 귀농과정 교육이다. 실전의 재배 기술에 대해서는 깊이 배우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값진 시간이 되었다. 농업의 근본적인 경제를 알 수 있는 모태가 되었다고. “특별한 작물에 맞추어서 교육 받지는 못했지만 천안연암대학에서 이수한 내용은 저에게 일명 농사꾼의 기질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습니다. 큰 틀을 읽고 나서야 어떤 분야라도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웃관계가 관건

영농지를 구매하고 나서 작물에 대한 고민보다 이웃의 따가운 시선과 반응에 많은 상처를 입었던 권 씨. 정작 그가 귀농지는 산위의 산이라 불릴 만큼 험난한 위치에 자리했다. 주민들은 도시 냄새가 풍기는 그를 보고 무슨 농사를 짓겠냐며 그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겼다. “처음 이 곳은 밤나무로 가득 심겨진 땅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황무지 같은 땅에서 밭일 한번 하지 않았던 제가 새로운 농작물을 일구겠다니,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워보였을지 저도 짐작은 갑니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지금은 하동군의 자랑이라 불릴 만큼 입지가 넓어졌지만 이웃들의 무관심에 외딴오지에 떨어진 것 같은 고충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하동을 대표하는 블루베리 열풍

블루베리를 선택한 그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생로병사의 비밀’이란 프로그램에서 블루베리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었어요. 짧은 소개 방송이었지만 당시의 블루베리 이미지가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나 친환경 과수라는 말에 마음을 움직였었죠. 사실 처음 배나무를 심어서 약을 치지 않고 키워봤지만 결과는 모두 시들어 죽더라고요. 그렇다고 약을 치면서 재배하고 싶지 않았던 중에 블루베리를 만난 것입니다.”
블루베리에 푹 빠진 그는 전국의 블루베리 농가를 일일이 찾아가는 열정을 발휘하며 작은 것 하나라도 얻고자 노력했다. 그 때 방문하는 농가들이 저마다 블루베리를 재배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가 결론적으로 내린 품종은 듀크. 하지만 듀크에 대한 국내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듀크를 심고나니 농가를 방문할 때마다 모두가 듀크에 대해 좋지 못한 말만 했습니다. 심지어는 세미나에서도 듀크에 대한 평이 그리 좋지 못했지요. 그래서 품종을 바꿀까 하기도 갈등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듀크를 통해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재 듀크의 최고 당도는 14.1°Bx까지 나왔습니다.”라며 듀크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그의 또 다른 보금자리 황토집

산 중턱에 땅을 일구어 집을 지으려하니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서 장비 및 원자재를 가지고 오기 어려웠던 것. 또한 흙집을 짓고 싶은 마음에 흙집교육을 다닐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원하는 구조를 지을 시공사들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도면까지 그려가면서 만든 것이 바로 황토집. 정갈한 멋과 기풍이 느껴지는 모양이 권영신 씨의 생각이 투영된 듯하다.
두 아들과 이 집에 살면서 삶에 큰 변화가 일었다고 한다. 우선 마음에 여유가 생겨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운지 새삼 깨달았다고. 그리고 아이들과 더욱 가까워져서 부모자식간의 사랑이 회복되었다. “얼마 전에 군대에 입대한 첫째에게 참 미안했어요. 예전에는 밥 한번 같이 먹기도 힘들었는데... 날마다 여기서 식사를 함께하니 아이들과도 더욱 친숙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은 그저 행복합니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

“솔직히 혼자서 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었겠죠. 제가 자리 잡기까지 도움 받았기 때문에 저도 천안연암대학의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은 하동에 블루베리 작목반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블루베리 재배를 전파하고 있어요. 제 작은 소망은 하동에 블루베리 센터를 만들어서 블루베리의 모든 것을 공유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라며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 과정이라며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담당부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담당(☎ 055-940-8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