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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재배와 함께 하는 인생 이모작

작성일
2010-01-11 13:42:01
이름
농업기술센터
조회 :
1476
경기도 남양주시 홍환기 농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전혀 연고 없는 농촌에 노후를 올인 하기’란 어찌 보면 무모하고 주변사람들에게 얼마나 갈까 하는 걱정과 호기심 거리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퇴직하고 2년이 지난 2002년 3월, 팔당 상수원개발 제한구역인 남양주시 조안면 산자락에 버섯 재배사를 지어 완전 이주한 홍환기씨(58세) 는 지금의 생활을‘한마디로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표현한다. 오래 전 홀로 된 어머니를 공기 좋은 곳에 모셔보겠다는 생각에 구입해 놓았던 땅이 정작 본인을 위한 노후 정착지가 될 줄이야.

이곳에 오기 전 예쁘게 늙고 싶다는 동갑내기 부인이 원해 퇴직 후 인사동에 전통찻집을 1년간 함께 경영해 보기도 했지만, 스트레스만 받고 혈압, 심장, 심한 갱년기 후유증 등으로 몸이 좋지 않았던 부인의 건강이 오히려 악화되기만 했다. 그래서 부인에게 환경 좋은 이곳으로 빨리 가자고 권했고 버섯재배는 실내에서 하는 일이라고 설득했다. 버섯을 택한 이유는 지금 사는 곳이 팔당 상수원 개발제한구역 등 무려 8개 규제항목에 묶여있어서 농축산시설외에는 건물허가가 나지 않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할 수 있는 농사작목으로 홍환기씨 눈에 느타리버섯이 들어왔고, 느타리버섯이라면 몸이 약한 그의 부인까지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버섯을 해야겠다고 맘먹으면서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을 여러 번 찾아갔어요, 농업기술센터도 많이 방문해서 귀찮게 했구요. 그리고 제가 많은 도움을 받았던 곳은 실제로 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정선의 한 농가를 찾아가서 그곳에서 한달 동안 무보수로 일하면서 버섯농사 기술을 익힌 것이랍니다. 그 뒤 내 몫으로 150평 면적의 재배동 1동, 집사람 몫으로 1동을 지은 뒤 본격적으로 버섯재배를 시작했어요."

물론 전문농업인들처럼 억대시설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버섯을 해야겠다고 맘을 먹으면서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을 여러 번 찾아갔다고 한다. 여기서‘초보자에게 버섯은 어려운 작목이니 가급적이면 돈이 적게 드는 간이재배시설로 작게 시작하라’는 충고를 받았고, 실제로 그렇게 간이재배를 하는 강원도 정선의 한 농가를 소개받아 한 달 동안 무보수로 일하며 버섯농사의 감을 익혔다. 그렇게 해서 2001년 11월, 본인과 부인 각자 몫으로 150평 면적의 재배사 1동씩, 2동을 짓고 느타리 버섯농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150평에 포트생산까지 하고 있으며, 홍환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버섯오방 공동체에 배분하여 이들과 공동출하하고 있다. 작지만 야무진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는 희끗희끗한 생머리를 길러 묶고 있는데, ‘머리 묶은 버섯아저씨’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려는 자신만의 브랜드 전략이란다. 지속적으로 남양주시농업기술센터를 통하여 기술도 배우고 거래처도 소개받아 아직까지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투자라는 개념으로 보면 소득은 변변치 않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정확한 소득을 밝히지 않지만“500만원 보다는 좀 많아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그러나 그는 “느타리버섯 재배가 내 삶인 동시에 일부로 봐요. 버섯을 담은 바구니 하나가 4킬로그램인데 그 정도는 지금의 제 체력으로 70세까지는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앞으로 10년은 더 이 일을 하려고 합니다”라고 한다. 농업에는 정년이 없기 때문에 그의 희망은 충분히 실현가능 하리라 본다.

무엇보다 홍환기씨는 이곳에 온지 1년 만에 부인의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지고 지금은 약 없이 생활하게 되었다고 자랑한다. 지난 여름, 집 앞에는 울긋불긋 예쁜 꽃들이 심어져 있고, 텃밭에는 옥수수, 고구마, 고추, 상추, 호박 등을 심어 놓았고, 집도 지키고 친구도 되는 개 2마리가 있었다. 이처럼 버섯재배 외에도 생명을 키우고 있는 부부의 생활모습 들을 집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100년 전 독일의 슈레버라는 의사는 도시의 환자들에게 한결같이 햇빛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채소를 키우는 농사일을 하라는 처방을 내렸다는데, 홍환기씨 부인에게도 농사일의 효험이 나타난 모양이다.
홍환기씨는 이곳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취미생활에 재미를 붙였는데, 수상스키이다. 집 앞이 바로 한강이기에 수상스키를 즐기는 게 자연스럽고, 수석 모으기와 야생화 가꾸기, 작은 쉼터를 손수 만들어가는 재미가 유별나다고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면 사우나도 가야하고 구두도 닦아야 하고 양주도 먹어야 하고... 드는 돈이 많은데, 지금은 전혀 카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고비용 취미가 아닌 노(No)비용 취미를 즐기는 셈이다. 하지만 노년기 농촌생활을 꿈꾸는 많은 도시민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홍환기씨는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남양주 시내에서 해결한다. 서울에서 사면 싸지만, 지역사회를 깊이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가지 않는다. 농촌에 와서 잘 적응하려면 절대 한 발만 들여놓아선 안 되고 철저하게 그곳 사람이 돼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과 친화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마을 대동회 행사 때는 주민들보다 기부를 더 많이 하고, 동네 애경사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한 1년간은 동네 주민들이 연락을 해오지 않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부인도 부녀회 회원으로 상가에서 꼬박 몇 일간 일을 돕는다. 동네 어른들을 가끔 집으로 초대해 손수 만든 찬에 식사도 같이 한다. 윗마을 12가구가 함께 김장도 품앗이 하며 지낸다.
지금은 커피를 하루 몇십잔씩 탈 만큼 홍환기씨 댁은 동네 주막처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으로 왔던 초기에는 작업복에 장화신은 자신의 모습이 친구들에게 분명 어설퍼 보였을 텐데, 정착한 지금에는 다들 부러워한다. 도시에서 퇴직금으로 뭔가 해보겠다고 나섰던 친구들은 모두 실패해서, 건강이 나빠 별 사업을 벌이지 않았던 친구들이 오히려 그럭저럭 연금으로 잘 지내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자신을 보며 당장은 어렵고 나중에 농촌으로 오겠다는 친구들에게“너무 늦지 말고 건강할 때 와라. 혼자 힘으로 돌 하나 들 수 있고 곡괭이질이라도 해서 뭔가 할 수 있을 때 들어오라”고 한다. 이곳에 온지 3년 만에 외지인에서 토박이로 자리 잡은 귀농 실버농업인의 말을 새겨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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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담당(☎ 055-940-8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