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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벌레와 풀잠자리의 ‘새낭골 귀농일기’

작성일
2010-01-25 10:20:57
이름
농업기술센터
조회 :
1654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사업이 잘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흔히 “에잇, 때려치우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 뭐!”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내뱉는다. 농담이라도 이런 말을 듣는 농부라면 언짢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땅과 가까운 삶, 자연과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간 지 어느덧 8년. 새낭골(춘천시 사북면 고성리)에서 풀잠자리 아내 홍주원 씨와 감자 다연(딸), 책벌레 영규(아들) 두 아이를 키우며 인생의 제 2막을 펼치고 있는 무당벌레 김태수 씨의 귀농이야기를 들어보자.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 졸업 후 과외와 학원 강사를 하면서 매일 칼날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살아야 했다. 어떻게 하면 도심을 벗어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하다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이 스물부터 시작된 전쟁 같은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었는데 결국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겨울이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빙어 낚시를 하러 자주 찾던 춘천 새낭골에서, 그냥 집하나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왔다. 살만한 곳을 알아보다가 아내의 학교 선배가 먼저 자리 잡은 새낭골 땅을 좀 나누어 팔라고 보채 약 1,000㎡(300평) 정도 땅을 샀고, 얼렁뚱땅 집을 지었다. 그리고 엎어진 김에 제사 지낸다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귀농을 해서 적응하는데,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

처음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로 무릎, 허리 등 온몸이 쑤시는 육체의 고통은 2년 넘게 계속되었고, 도시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상념들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지어놓은 농산물을 파는 것이었는데, 수확한 농산물을 집안에 쌓아두고 그저 바라만 볼 때의 그 막막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귀농을 결심하고 내려오기까지 부인의 반대는 없었나?

죽어도 농사꾼의 아내는 되지 않겠다고 하던 아내를 시골에서 집짓고, 농사지으며 여유 있게 살자고 꼬드겼다. 결국 그 꼬임에 넘어가 농부의 아내가 된 그녀는 시골생활 몇 년 만에 이웃집 할머니에게 쌀도 꾸어오고, 상추도 얻어오는 시골 아주머니같이 넉살 좋은 여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문제에 대한 고민이 상당히 컸을 듯 싶다.

젊은 농부라면 누구나 겪는 어려운 문제다. 그런 면에서 큰 아이에게 참 미안하다. 다연이가 새낭골에 왔을 때 또래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마당에서 놀라고 내버려두기보다 마당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몫인데 그걸 못했다. 엄마, 아빠가 시골 생활에 적응하느라 아이들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시골 생활 적응까지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
다섯 살 때 새낭골에 들어온 큰 아이는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고, 둘째는 초등학생이다. 학생 수가 적은 시골 학교에서는 복식 학급으로 수업이 운영되고, 교사가 행정 잡무까지 봐야 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두 아이와 아내를 춘천 시내로 보내 ‘주말 가족’이 되었다. 주중에 한 번은 나가서 아이들을 보고, 주말이면 아이들이 아빠를 만나러 집으로 돌아온다.

농사일로도 바쁠 텐데, 홈페이지 ‘새낭골 귀농일기’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홈페이지를 연 의도는 세상과의 소통 기능이 절반, 소비자 직거래 기능이 절반이다. 대규모 농업이라면 한해 소출을 도매시장 시스템에 넘겨도 괜찮지만, 우리 같이 유기농을 하는 소농은 직거래밖에는 방법이 없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유통은 거짓말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시골로 내려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얼마 전 다연이가 나중에 크면 아빠처럼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농사가 힘든 일이란 걸 어려서부터 보면서 자랐기에 다연이는 아빠가 농사짓는 걸 싫어했다. 그러던 녀석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작물의 소중함을, 자연의 고마움을 아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시골로 내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농사짓는 주요 작물과 한 해 소득은 어느 정도인가?

주 작물은 고추이고, 배추와 감자, 참깨, 멜론 농사도 함께 짓는다. 주로 노지 밭농사지만, 일부는 시설 경작도 한다. 소득 면에서 보면 2002년 귀농 첫해 올린 연간 소득은 고작 150만원, 이듬해에는 400만원을 벌었고, 3년차가 되자 1,000만원을 넘겼다. 지난해는 2,500만원쯤 벌었는데, 올해도 이 정도 예상하고 있다.

경제적.육체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농촌 생활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입은 줄어도 생활의 질은 높아졌다. 대학생이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다. 처음엔 무릎, 허리 다 아프지만 곧 단련된다. ‘어려울 거야“라는 생각이 귀농을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거 같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삶의 가치를 어디에 더 두느냐의 문제이지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은퇴 후 전원생활을 위한 것인지, 저녀 교육과 고정수입을 원하는 것인지, 귀농의 형태를 먼저 파악한 뒤 귀농지와 작물을 선택해야 한다. 또 도시에 살면서 미래 소비자와 신뢰 관계를 쌓는 판로 준비도 중요하다.
나를 믿고 내 농산물을 구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50명만 있어도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다. 50가구의 식탁에 내 농산물을 월 3만원어치만 올려놓을 수 있으면 150만원은 번다. 땅 구입은 발품, 농사짓기는 텃밭을 일구며 ‘고수’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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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담당(☎ 055-940-8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