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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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자연을 선택하다’

작성일
2010-03-15 09:37:31
이름
농업기술센터
조회 :
1247
시골에 내려온 지 어느새 13년이 되어간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괜찮다는 직장에 다니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던 내가 시골로 온 것은 순전히 남편 때문이었다. 동갑내기인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부터 남편은 마흔이 되면 농부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서른 살 내게 마흔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은, 너무도 먼 미래였다. 그렇지만 10년은 살같이 지나갔다.

흙을 찾은 초보 귀농 부부

마흔 둘이 되던 해, 남편이 시골로 가자고 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절실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아보니 서울에서 꼭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시골행을 결정하고 처음 본 땅에 우리는 덜컥 자리를 잡았다. 남편 선배가 소개해준 땅에는 내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있었다. 그 느티나무 옆에 자리 잡은 것이 실수가 아니라 우리가 살 땅에 대해 전혀 공부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였을까, 문제가 줄줄이 이어졌다. 제일 중요한 농사부터 그랬다. 농사를 짓겠노라고 노래를 불렀던 남편은 농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살면서 몸으로 익히리라, 그렇게 생각했단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만약 농사에 대해 눈곱만큼이라도 아는 것이 있었다면 그리 쉽게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고 진짜 농부 되다

농사는 어려웠다. 첫 해는 들기름 두 병, 둘째 해는 앞밭에서 지은 고추 농사로 번50만원이 소득의 전부였다. 본격적인 작물로 시작한 두릅은 죽을 쑤었다. 집에서 1시간쯤 떨어진 곳에 땅을 얻었는데, 잘 나오는 두릅 순을 누군가가 다 베어가고 말았다. 이웃 마을의 얻은 땅에 지은 고구마와 호박은 거두지도 못했다. 마음이 바뀐 주인이 수확철 경운기 올라가는 길에 배추를 심어버린 거였다.
우리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산골짜기에 작은 다랑논을 마련했다. 이듬해는 논 옆에 작은 복숭아 과수원을 마련하여 벼와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 선진 농원으로 견학도 다니고, 친환경 농업단체의 교육도 많이 쫓아다녔다. 유기농 인증도 받고 열심히 했지만 소득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크게 좌절한 적도 있었다. 3년 전이었다. 날씨가 유난했다. 봄 가뭄이 극심하더니 복숭아가 익을 무렵부터 비가 줄곧 내렸다. 한꺼번에 내린 비에 복숭아가 리듬을 잃었는지 주저앉고 말았다. 생물로 내는 것을 포기하고 모두 즙을 내야했다. 무쇠 같은 남편도 허물어졌다. 이틀 만에 애매미충이 온 과수원에 번져 혼비백산했던 것도 아픈 기억이다.

귀농 경험 알리려 사이트 ‘앙성닷컵’ 개설

판매도 문제였다. 농부도 어려운데 장사까지 해야 했다. 우리같이 농약과 화학비료 안 친 농산물은 일반 시장에서는 아예 경쟁이 되지 않았다. 수확량에서 밀리고 볼품도 없으니까. 소비자를 직접 찾아 나서는 방법밖에 없었다. 2000년 8월, 당시 살았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앙성닷컴’ 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판매 이외에도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40년 넘게 도시에서만 살았던 사람으로서 도시와 농촌을 잇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예전의 나처럼 농사와 농촌에 대해 관심도 없고, 또 모르는 이들에게 농사의 즐거움과 어려움, 그리고 자연이 주는 위로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올해로 만 10년을 맞는 이 사이트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허공의 집이 되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도시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서 따스한 격려와 응원을 받는다.

씨앗은 힘이 세다

12년 전, 생전 처음 내 손으로 콩을 심던 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콩알에서 과연 싹이 날까, 조바심이 났다.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일하려니 몸도 힘들었다. 그렇게 콩을 심는데 꼭 열흘이 걸렸다. 그 사이에 비가 내리기도 했고, 먼저 심은 곳에서는 어느새 잡초가 올라왔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날도 콩을 들고 앞밭에 나갔는데 제일 먼저 심은 메주콩이 전날 내린 비에 일제히 싹을 올렸다. 마치 선생님에게 뽑히기 위해 ‘저요, 저요’하고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아이들 같았다. 제 몸뚱이보다 더 큰 흙덩이를 머리에 얹은 채 싹을 올린 녀석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씨앗은 정말 힘이 세구나’ 농사는 사람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존재의 근원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비록 잠깐씩이지만, 낮고 순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산골에서 펼치는 인생 2막

2년 전에 우리는 10년 동안 살던 곳을 떠나 봉화 산골로 들어왔다. 750m 고랭지에 우리는 남회룡리에 하나밖에 없다는 논을 만들었다. 지난 봄에는 앞밭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주는 대로 거두리라’ 그리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농사지으며 사는 것이 싫지 않다. 아니,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이 곤해도 해가 뜨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것이 즐겁다. 돈은 없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사방에 있으니 마음이 넉넉하다. 오래도록, 죽을 때까지 농사짓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고 또 할 만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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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담당(☎ 055-940-8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