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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작성일
2023-02-08 11:58:09
이름
신동환
조회 :
1251
설이 지나고 연일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그야말로 살을 에는 추위다.
72년전 신원면 주민들은 설 명절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금의 매서운 한파보다도 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있었던 날이 정월 초엿새 바로 오늘이다.

1951년 국군에 의해서 무고한 양민 719명을 앗아간 그 전날에 눈이 내렸다. 그만큼 추위도 매서웠겠지만 희생자 가운데 어린 아이들이(14세 이하) 무려 359명이라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삶과 죽음의 의미도 모른 채, 죽어야 할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원망도 모른 채 그렇게 최후를 맞았을 그들의 눈망울이 그려지는 듯해 비분을 감출 수가 없다.
그 추운 겨울에 옷가지도 변변찮은 채 끌려 나가 얼마나 떨었을까. 발은 또 얼마나 시렸을까. 나 어릴 적에도 눈이 내린 날 아침은 유난히 추웠다. 고무신에 양말을 몇 겹 껴 신어도 젖어 드는 시려움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하물며 그 시절이야.
피어나지 못한 꽃망울 같던 어린 그들을 앗아간 그 겨울이 더 원망스럽다. 계절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돌고 돌지만 박산 골짜기에는 언제나 봄이 오려나….

요즘 나의 뇌리는 온통 거창사건으로 가득 차 있다. 이상한 버릇마저 생겨났다.
길을 갈 때면 그날에 이어졌을 주민행렬이 연상되고, 학살이 자행된 부근을 지날 때면 괜히 숙연해지곤 한다. 특히 오늘같이 추운 날이면 희생된 어린아이들 생각에 꽁꽁 언 귓등을 싸릿가지에 맞은 것처럼 내 마음도 아려온다. 이렇게 변하게 된 연유는 이번에 지역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향토사를 집대성하여 이를 기록․보존하기 위한 신원면지 편찬작업에 필자가 거창사건 집필을 맡게 된 데 기인한다.
지난 수개월 동안 자료와 씨름 끝에 얼마 전 탈고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나의 인식도 많이 바뀌게 된 것이다.

거창사건은 공비토벌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즉, 국군의 작전수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난, 혹은 의도되거나 조직적인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불상사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이전에 거창사건을 인식하는 수준이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내 집안 내 이웃의 일임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리고 순수한 영혼마저 앗아간 집단학살극을 작전 수행중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하기에는 너무나 논리가 빈약하다.
“나이 많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죄가 있다면 제 고향에 엎디어 산 죄밖에 없는데….”라고 한 어느 생존자의 절규처럼 거창사건은 국군이 무고한 양민을 집단학살한 사건이다.

거창사건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아픈 과거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과거청산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여기에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피해보상, 정신(가치)계승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과거청산은 진실규명 없이는 불가능하다. 진상규명으로 밝혀진 사실을 기초로 국가는 피해자나 그 유족들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인지, 가해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이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창사건에 있어서 사망자의 숫자, 사망시간과 장소 등을 제외하고는 미진한 점이 너무 많다. 특히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순박한 양민들은 통비분자라는 누명을 쓴 채 국군의 총탄에 생명을 잃고, 솔가지에 태워지고, 흙더미에 깔린 채 오늘날까지 신음하고 있다.
사건 자체를 축소하고 은폐하고 조작하고 왜곡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60년대 국회양민학살사건특별조사위원회부터 거창사건등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력이 있었고 피해자를 등재하는 등의 성과도 있었지만 개운치 않은 것은 나만일까.

책임자처벌 문제에 있어서도 거창사건은 비록 군사재판에서 처벌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궁극적 책임의 소재를 뚜렷이 밝혀내지 못하여 양민학살과 직접 관련하여 처벌된 자가 2인에 불과했으며, 형량도 다른 범죄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었고, 1년여가 지나 관련자들이 석방됨으로써 그 낮은 처벌마저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곧바로 복권되어 고위직을 계속 역임했던 것을 볼 때 과연 이것을 정의관념에 합당한 처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창사건은 국군의 양민학살이라는 불법행위로 발생하였다. 불법행위에는 손해배상의 책임이 따른다.
손해를 전보하여 손해가 없었던 것과 동일한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을 손해배상이라 한다.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하여 그 피해자에게 배상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유족들에 대한 배상과 보상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창사건 특별법 개정법률안이나 배상 등에 관한 특별법안 발의 등이 있기도 하였지만 아직까지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상과 관련하여서는, 소멸시효 법리에 따른 시효기간의 경과로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하였다는 것이 지금까지 대법원의 태도였으나, 헌법재판소의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제한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에 따라 대법원이 지금까지 견지해 온 입장을 얼마 전 바꿈으로써 유족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제를 취하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개별적인 청구권을 행사하여야 하는데 그러기보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책임을 다하는 능동적인 조치를 취함이 마땅할 것으로 보인다. 배상 등에 관한 법률 제‧개정을 통해 고통받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억울한 원혼을 달래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그렇다고 뼈아픈 역사의 상처는 금전적 배상만으로 치유되지는 않는다.
책임 있는 자들이 역사 앞에 뉘우치고, 국가는 재발을 방지하며, 우리 모두는 진실이 외면 당하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와 같은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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