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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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농촌 아낙네

작성일
2009-11-09 14:46:14
이름
농업기술센터
조회 :
1071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이장댁입니다.”

요란스러운 전화 벨소리가 새벽잠을 깨운다.

결혼잔치에 쓸 표고버섯을 주문하는 전화다. 요즘은 웰빙 시대라서 친환경 무농약의 건강식품들을 많이 찾는다. 표고버섯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식품들 중의 하나이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창문을 통해 비쳐드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주문받은 표고버섯을 보내고 장마가 온다고 하니 고추밭에 가서 고춧대를 단단히 묶어주고 참깨와 가지에도 지줏대를 세워주고 오이와 호박 넝쿨에는 유인줄을 매달아야지...

내가 남편을 따라 귀농한지도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도시에서 살아온 나는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시아버님 생전에 어쩌다 시댁에 들르게 되면 논에는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넘실거리고 감나무엔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고추밭에는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풍경이 참 행복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남편은 애향심이 남달라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에 내려가 농장을 운영하며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하였다. 도시에 살면서도 남편은 충청향우회, 충남도민회, 보령시민회와 같은 고향 사랑의 모임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열의가 대단하였다.

우리는 서울에서 식당 유통업등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었으나 IMF라는 큰 태풍 앞에서는 어쩔 수 가 없었다.

남편은 연달아 사업에 실패하였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남편 고향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시골에 내려와 막상 농사를 지으려고 하니 밭은 거의가 자갈밭이었고 논은 대부분 다랑이 논이었다. 그동안 해왔던 생각과는 너무 다른 현실에 눈앞이 깜깜했다.

또한 시어머니와 세대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때 그때마다 참고 이겨내야만 했다.

더구나 농사를 지어본 경험도 전혀 없는데다가 영농자금도 많이 부족해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우리는 먼저 시골에 정착해서 살아갈 자금이 필요했다. 우선 귀농 융자금을 받아 좁은 비탈길을 넓히고 관정을 파고 논 정리를 하였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영농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농사일에 적응해 나갔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우리는 많지도 않은 땅에 농사만 지어서는 생활을 해나가기가 힘들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특용작물을 재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선산에는 조부님께서 심어 놓으신 참나무가 많이 있었다. 참나무는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데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표고버섯 농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부여, 청주, 여주, 천안 등 전국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표고버섯 재배교육을 수십번 받고 산지 견학을 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일년 반을 바쁘게 보내고 난 이듬해 가을부터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하였다. 산림청으로부터 벌채허가를 받아 나무를 베어 토막을 내었다. 수개월 동안 얼렸다 말린 후 종균을 넣고 나무에 물주기를 수십 번 반복하면서 버섯이 나기만을 일년 넘게 기다렸다.

부푼 기대를 안고 오랜 시간 기다려 드디어 피어난 표고버섯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얼마나 신기하고 가슴이 벅차던지 마치 첫 아이를 낳은 때처럼 기뻤다.

뽀얀 속살을 들어내며 방긋방긋 웃고 있는 버섯을 보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다 죽은 나무에서 저렇게 예쁜 버섯이 나오다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표고농사도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폭설로 표고하우스가 무너지는 바람에 종균을 잘 먹은 원목이 잘게 부서져 버섯 수확도 해 보지도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또 어느 한 해에는 폭우로 논밭 둑이 무너져서 다 자란 농작물이 물에 쓸려 떠내려가기도 했다. 빚은 점점 늘어만 가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농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간절해졌다.

그러나 남편이 농촌생활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농사일에 매진해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무쇠처럼 무거운 참나무를 산꼭대기에서부터 굴려 내린 다음 경운기에 싣고 집까지 옮기느라 허리는 휘어지고 손은 부르터서 나중엔 굳은 못이 박혔다. 밭에 돌멩이는 왜 그리도 많은지 주워내고 주워내도 끝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부지런히 노력하고 열심히 일을 한 결과 처음에 빌렸던 귀농 융자금을 다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표고버섯 하우스 13동과 영지버섯 하우스 2동을 가지고서 연간 약 5,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작은 농촌 사업가가 되었다.

물론 저장 창고 등을 짓느라고 아직도 빚은 좀 남아 있다. 앞으로 톱밥 배기 표고와 녹각 영지 재배에 전력을 기울여 연간 1억원 이상의 소득으로 올리는 것이 나의 꿈이다.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이제 우리에게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농촌에 내려와 적응을 잘하고 성실하고 야무지다는 말씀들을 종종 하신다. 남편은 동네 어르신들의 만장일치로 추천을 받아 현재 마을 이장을 4년차 연임하고 있다.

밭농사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 이젠 수확물도 많이 늘었다. 올해도 2,000주의 고추를 심었고 참깨와 들깨, 콩과 팥 조, 옥수수 등의 곡물과 내가 특히 좋아하는 토마토, 수박, 참외 등의 과일과 오이, 호박, 가지 등의 채소를 골고루 심었다.

오늘도 나는 표고버섯을 따서 출하하고 논밭에 심어놓은 농작물을 살펴보러 나간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면 행복해서 잘 자란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믿고 발길을 재촉한다. 어디가 아프지는 않은지 밥은 잘 먹는지 마치 갓난아기를 키우듯이 정성으로 보살피는 것이다.

특히 남편과 나는 친환경 농촌 살리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제초제 한번 사용하지 않은 탓에 잡초를 매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지만 깨끗하게 매어진 밭고랑을 보면 기분이 좋고 마음이 뿌듯하다.

커다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있는 까맣게 탄 내 모습은 누가 보아도 농촌의 아낙네다.

오늘도 해질 무렵 호박을 따다가 동네 사람들 집집마다 나누어 주면서 농사꾼의 보람을 느낀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알송알 맺혀 흐르지만 정말 귀농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올 여름에도 변함없이 낮에는 매미들의 음악 소리, 밤에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익어가는 고추냄새를 맡으며 즐거운 농촌 아낙네가 되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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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담당(☎ 055-940-8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