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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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어원
거창은 예부터 크게 일어날 밝은 곳, 매우 넓은 들, 넓은 벌판, 즉 넓고 큰 밝은 들이란 뜻에서 거열(居烈), 거타(巨陀), 아림(娥林)으로 불리어 오다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거창(居昌)으로 처음 불린 후 주변영역과 분할, 합병되면서 여러 지명으로 불리다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야시대

선사시대부터 일찍이 삶의 터를 잡은 거창은 초기가야시대에는 자타국(子他國), 거타(巨陀)라고 불리다가 후기 가야에는 대가야 연맹체의 일원이었습니다.

신라시대

신라 초기에는 거타(居他), 거열(居列)이라 칭했고 경덕왕 16년 (757년)에 거창군으로 칭하고 염례(稔禮)를 함음현(咸陰縣)으로 남내(南內)를 여선현(餘善縣)으로 개명하여 거창군에 편입 시켰습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 태조 23년 (940년)에 餘善縣(여선현)을 感陰縣(감음현)으로 咸陰縣(감음현)을 加召縣(가조현)으로 개칭하였고 현종 9년(1018년)에 陜川을 陜州로 승격시키고 居昌, 加召, 感陰, 三嘉, 利安 등 12縣을 陜州에 속하게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 태종 14년 (1414년) 加召지방에 이주한 巨濟와 거창을 병합하여 濟昌縣(제창현)으로 칭하고 연산초(1296년)에 연산비 신씨의 貫鄕(관향)으로 거창군으로 승격하였으나 중종초(1506년) 단경왕후 신씨의 폐위로 다시 거창현으로 격하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조 15년(1739년) 단경왕후 복위로 居昌府로 승격하고, 고종 32년(1895년) 거창부를 거창군으로 개칭하고 1914년 安義郡 馬利, 胃川, 北上과 三嘉郡의 神院面을 편입시켜 거창군을 이루었습니다.

근대

근대 1937년 거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57년 월천면이 거창읍에 편입되었고 1972년 함양군 安義面 眞木里, 春田里가 남상면으로 편입되었습니다. 현재는 거창읍, 주상, 웅양, 고제, 북상, 위천, 마리, 남상, 남하, 신원, 가조, 가북면으로 1읍 11면의 행정구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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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055-940-3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