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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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사 은행나무
모자 이별의 눈물 어린 사연이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연수사 앞에 1,000여 년이나 되는 되는 은행나무 한 그루와 전나무 한 그루가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이 두 나무에는 모자 이별의 눈물 어린 사연이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때 이 절에는 보살 한 분이 있었다. 이 보살은 본디 사대부 집안의 규수로서 왕족에게 혼인을 하였으나 무신의 난 때 남편이 죽고, 문중이 몰락하는 비운을 맞게 되어 유복자를 데리고, 이 절을 찾아 와서 부처에 귀의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이 유복자는 점점 자라나면서 머리도 총명하고 효성도 지극하였는데 때로는 절간의 나무도 자르고, 불경도 외우고 하며 절간의 일들을 어렵지만 불평 없이 잘 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절에 한 노승이 찾아와서 머물게 되었다. 이 노승은 며칠동안 이 절에 머물면서 보살과 아이의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이 절을 떠날 때가 되어 보살에게 하는말이, "이 아이는 앞으로 귀히 될 상이라, 이 절에서 썩히기 아까우니 소승이 데려가 그 재질을 갈고 닦아서 훌륭한 인물로 만들터이니 소승에게 맡겨 주시오."라고 했다.

보살은 깜짝 놀라, "아니되옵니다. 제가 비록 속세와 연을 끊고 불문에 들어와 자식에게 연연함은 마땅치 않은 일이오나, 내 생명같이 여기는 자식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어 그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는 큰 다행으로 여기고 있사온데 오늘 스님께서 자식과의 연을 멀리 하게 하려 하시니 되지 않을 일이옵니다."하고는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스님의 말에 보살은 하룻밤을 지새며 염불을 올리면서 생각을 거듭한 결과 자식을 평생 자기 곁에 둘 수도 없으려니와, 또한 자기 때문에 자식을 절간 일이나 하면서 살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스님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그 뜻을 아들에게 이야기하고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슬피 울었다.

아들은 보살의 말을 들은 뒤 어머니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는 "어머니, 너무 슬퍼 마십시오. 오늘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십 년이 되든 이십 년이 되든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어머니를 찾아오겠습니다."라고 오히려 보살을 위로했다.

날이 밝아 노승과 아들은 절을 떠나게 되었다. 보살은 그래도 마음이 너무나 슬퍼서 눈물을 흘리면서 작별을 하려 하니 아들이," 어머니 울지 마십시오. 저는 높고 푸른 뜻을 품고 어머님 곁을 떠납니다. 그래서, 전나무를 한 그루 심어 놓았으니, 이 나무가 사시사철 청청하게 꿋꿋이 자라는 것을 저를 보듯이 보아 주십시오. 반드시 성공하여 어머님을 뵈옵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보살도 "오냐, 반드시 성공하여 돌아오너라, 나도 앞뜰에 은행나무를 심어 놓을 터이니 만약 네가 성공하여 돌아와서 내가 없더라도 이 은행나무를 나 본 듯이 반겨라."했다. 그런 후 두 모자는 안타까운 이별을 하고 말았다. 두 모자의 뒷 이야기는 전하여지지 않았으나 지금도 은행나무는 무성한 가지를 뻗고 있으며, 전나무 또한 푸르고 곱게 자라 청청한 잎들이 춘하추동 질 줄 모르고 있다. 다만 전나무 가지만이 십여 년 전 강풍에 못 이겨 부러진 것이 아쉽기만 하다.

전해 오는 말에 해공 신익희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천둥 ·번개가 치고 강풍이 몰아쳐서 이 나무가 부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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