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승과 서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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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승과 서동요

마리면 영승리는 원래 영송(迎送)이었다 하는데, 이것은 신라와 백제의 사신들을 이곳에서 맞이 하고 또 보내었다고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다른 전설로는 백제 무왕이 왕자시절 변복으로 신라의 서울인 경주에 잠입하여 서동요를 퍼뜨려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를 데려온 일화와 관련된 유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동은 백제의 왕자이다. 그가 변복을 하고 사신을 따라서 적국인 신라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백제로서는 큰 사건 중의 하나 일 수 밖에 없었다. 서동이 신라로 넘어간 후 이 지역에는 만약의 사건에 대비하여 수많은 군사들이 배치되었을 것이며, 여차하면 국경선을 넘어 신라의 땅으로 밀고 들어갈 준비를 충분히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백제의 땅인 이곳은 긴장감이 넘쳐 흘렀을 것이고 서동이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팽팽한 분위기를 풀지 못하고 경계태세에 임했을 것이다. 그런데, 서동은 사신의 일행을 따라가서 적정을 충분히 탐지하고 아울러 적국의 왕녀인 선화공주까지 꾀를 써서 데리고 돌아왔으니 수많은 군사들의 환호성은 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남음이 있었으리라. 그래서 서동을 이곳에서 신라로 보내고 무사히 맞이하였다 하여 영송이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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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055-940-3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