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선생의 신혼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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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명 진사의 아들 정동계 옹은 공부는 잘했으나 열일곱 살 때 마마를 앓아 얼굴도 얼금얼금 얽어서 미남도 아니었으며 가세도 넉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살던 역골에서 남쪽으로 십리 남짓한 영승에는 윤할이라는 만석거부에게 혼기가 된 예쁜딸이 있었습니다. 그는 딸의 배필을 구하느라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차에 견의 서당에 많은 수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윤할은 곧 사람을 보내어 그 서당의 훈장과 총각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예쁜 딸을 가진 부자집의 초청을 받은 총각들은 각기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언동은 각별히 조심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객간의 인사가 끝날 무렵에 빨간 앵도와 호박색 꿀이 푸짐하게 놓인 상이 나왔고 모처럼 귀한 음식을 만난 총각들은 한꺼번에 한입씩 집어 넣고 싶었으나 주인 어른이 점잖게 앉아 있는지라 조심스럽게 앵도를 한 알 한 알 꿀에 찍어 먹는데 정동계는 접시에다 꿀과 앵도를 듬뿍 버물러서 한입씩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실속있게 음식을 먹는 것을 본 윤할은 그의 의젓한 언동과 평소 정진사의 덕망을 아울러 생각한 끝에 동계를 사윗감으로 내정하고 안으로 들어가 부인의 의향을 물었으나 부인의 의사는 판이하였습니다. 문틈으로 총각들의 거동을 살펴봤던 부인은 동계의 음식을 먹는 태도가 무작스럽고 곰보라는 것과 또한 가난한 것을 들어 반대했습니다. 윤할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19세 동계를 사위로 삼았습니다.

혼례를 치른 신랑은 화촉이 밝혀진 신방에서 아름다운 윤규수와 초면상을 받았고 사랑방에서는 새 사돈끼리 향연을 즐기면서 담소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신랑은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도 젓가락도 들지 않았습니다. 신부는 잔을 권하다가 까닭을 물은 즉, 신랑이 난생 처음 진귀한 음식을 대하니 어머니 생각이 나서 먹을수가 없다고 말하는지라 종이를 펴놓고 봉개를 쌌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미흡해 하는 신랑을 바라보던 신부가 조심스럽게 물어본 즉 그 봉개를 어머니께 드리고 와야 마음이 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효성에 감동된 신부는 책속에 봉개를 감추면서 대문밖까지 전송하여 주었습니다.

동계는 십리 길을 단숨에 뛰어가서 어머니 앞에 엎드리니 신방을 비워두고 온 그를 꾸짖어 곧 돌려 보내려고 하였으나 기어히 봉개를 펴드시는 것을 보고서야 돌아가 신방을 치루었다고 합니다. 동계는 신혼시절에 장모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선을 볼 때부터 장모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고 여러 사위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가난했던 것입니다. 윤할의 집에는 큰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많은 대추를 거두어 사위들을 대접했는데, 작은 것만 골라 동계에게 주었고, 또 한번은 처가 대문채를 새로 짓는데 동계가 뒷날 일산이 드나들 수 있게 높이 지으라고 말하다가 장모와 여러 동서들에게 핀잔을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뒷날 동계가 경상도 감사가 되어 과연 일산을 받히고 오니 장인은 즉시 대문을 헐어 일산을 맞았고 대추나무도 베게 하였으며 그 뒤로부터 영승에는 대추가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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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055-940-3413)
최종수정일
2015-02-01 0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