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대 사진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로 사선대라고 부른다.

사선대는 월성 계곡 상류에 놓인 명소이다. 월성에서 황점 가는 길 중간에 있다.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이곳에 은거 하면서 머물러 송기 또는 송대라고 불렀다.

1909년 고종의 5남 의친왕 강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전(前) 승지 정태균을 찾아와 머울면서 북상 위천지방의 우국청년들과 만나 사선대 일대를 뒷날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훈련장과 병사를 만들기 위하여 준비하던 중 일제에게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구국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이곳은 왕실의 선원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사선대라 부른 것을, 대암 포갬이 4층이고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로 사선대라고 부른다. 맨 아래 바위면에 전서로 사선대라고 새겨진 곁에 경상 감사 김양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마치 기단 위의 3층탑을 방불케 하는 사선대 맨 위 바위는 마치 거북 같기도 하고, 봉황새 모양 같기도 한데, 그 머리 부분이 남덕유 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선대는 그 경치가 기이하고 빼어나 18세기의 화가 진재 김윤겸(김희성)이 송대라는 제목으로 그린 담채 수묵도가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남아 있다. 1770년경 진주 근천의 소촌 찰방을 지낸 진재 김윤겸이 남긴 산수화첩에 원학동의 절경인 가섭암, 가섭동폭(유안청계곡), 순암(장군바위), 송대(사선대)가 들어 있다, 지금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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