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우 곽종석 선생의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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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의 거유이자 애국지사인 면우 곽종석 선생은 신동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선생은 11세에 벌써 대학을 읽게 되었으나 가난한 탓으로 책이 없었습니다. 그 때 개울 건너 마을에 사는 강계 원을 지낸 하강계 영감 집에는 많은 장서가 있었으므로 어린 곽 소년은 하영감댁에 대학을 빌리러 갔습니다. 어른들과의 교분이 두터운 하영감은 평소부터 곽소년을 귀여워 하던 터이어서 반갑게 맞이하여 글 공부를 착실히 하라는 당부와 함께 대학을 찾아 주었고 곽 소년은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대문을 나섰습니다. 하영감은 곽 소년의 뛰어난 재주를 알고는 있었지만 11살에 대학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곽 소년이 책을 도로 가지고 왔기에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앞 개울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에 책을 다 읽었으므로 집에까지 가지 않고 돌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징검다리까지는 삼백미터 밖에 안되는 길이니, 하영감은 곽 소년의 말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 뒤 또 사서삼경을 모두 빌리러 왔는데 들고 가기에는 너무 무겁다 하여 사람을 시켜 보내 주었더니 이번에는 엿새 만에 그 많은 책을 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영감은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얘야, 정말로 다 읽었느냐?"하고 물으니 "그러하옵니다."라고 분명히 대답하는지라 대학을 암송해 보라고 하였더니 한 자도 빠짐없이 줄줄 외어 조금도 틀리는 곳이 없었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아니하여 이번에는 사서 삼경에 관해서 시험을 하여 보았으나 일언일구도 막히는 구절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문리까지도 통달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하영감은 곽 소년의 글 공부에 많은 편의를 제공하였고 친어버이처럼 사랑하며 아꼈다고 합니다.

또 곽 선생이 다전에서 후진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입니다. 칠원 땅의 김 모 씨가 세 권의 선대 유고를 선생에게 교정 받아간 일이 있었는데 김 씨 집에 불이 나서 교정받은 유고가 간행을 못한 채 불타 버렸습니다. 김 씨는 집을 태운 것보다 유고의 소실을 통탄하여 마지 않고 나날을 수심으로 보내다가 행여나 하고 다전으로 면우선생을 찾아와 선대유고 소설의 한을 알렸습니다. 선생은 김 씨를 위로하고 면우에게 책 세 권을 매어 오게 하고 사흘동안 다전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사흘 뒤에 한 자도 본래의 유고와 다른데 없는 세 권의 책이 김 씨 앞에 놓였습니다. 김 씨는 감탄을 감추지 못하였고 많은 문인들도 말로만 듣던 스승의 재주에 경탄하여 마지않았습니다. 이러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왔던 면우 선생의 재주에 관한 신화같은 이야기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전하여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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