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으로 추대된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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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愼幾)

본관은 거창이고, 호는 경재(景齋)이며, 덕기(德器)가 있고, 역학(易學)에 정진하고, 성리학에 깊은 조예가 있어서 중망이 높았습니다.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도사, 이조정량, 성주목사, 전하관찰사, 예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이시애난 때 공을 세웠습니다. 그 후 가선대부 호조참판 등이 추증되었습니다.

이지활(李智活)

선생의 일대기

선생은 조선 단종 세조 때의 문신이었습니다. 선생은 14세 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18세에 추천에 의하여 운봉 현감에 임명되었는데, 단종께서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난 후, 곧 벼슬을 그만 두고, 가조 박유산에 들어가서 망월정(望月亭)을 세우고, 조석으로 참배하면서 망월정시를 짓고, 또 박유(朴儒)를 제사하는 제문을 지었습니다. 그리하여 평생을 폐인같이 세상을 등지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켰으며 사후에는 이조 판서가 주증되고 여러 서원에서 제향되고 있습니다.

선생의 망월정시

밤마다 사모하여 밤이 깊었네 동쪽하늘의 반달은 두 고을을 비추니 이 때의 원한을 누가 이해하랴?
외로이 산정(山 亭)에 기대니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고나!

위 시는 선생께서 망월정을 의지하여 평생을 폐인 같이 생활하면서, 영월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단종 임금을 애절하게 그리면서 지은 시입니다. 고은문집(孤隱文集)이 전하고 있습니다. 고은이란 선생의 호입니다.

임득번(林得蕃)

선생의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호는 석천(石泉)인데, 우리 향토 학문사회뿐 아니라, 도덕인품면에서도 단연코 사표(師表)가 되는 갈쳔 선생의 아버지입니다.

정옥견(鄭玉堅)

본관은 팔계이고 호는 확계이며 조선 성종 때의 학자였습니다. 학문이 깊을 뿐만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였기에 성종대왕 때 세인의 추천으로 사포서 별제라는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간사한 무리들이 날뛰는 꼴을 보고는 벼슬을 그만 두고, 학담 위에 은둔하였으며, 별세 후에 집의(執義)가 추증되었습니다.

권시민(權時敏)

선생의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삼괴당(三怪當)으로 조선 성종 계묘년(성종 14,1483)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습니다. 한훤당 김굉필 선생에게 배웠으며, 인품이 뛰어났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세마(稅馬) 벼슬을 주었으나 무오사화 후에는 초야에 은둔하면서, 학문과 수양에만 힘썼습니다.

변벽(卞壁)

본관은 밀양이고 호는 구산(龜山)으로 조선 중종 때 사마시에 급제하여 기묘현향에 선발되었지만 벼슬은 사양하였습니다. 모계 문위 선생은 구산 선생을 찬양해서 말하기를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학문을 좋아한다 하였으며, 동계 정온 선생은 찬양하기를 깨끗한 선비로서 효도하며 학문에 열중하여 게으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류자방(流子房)

본관은 문화인으로 호는 추담이며, 조선 중종 때 기묘현향으로 추천되었습니다. 잠곡 김육은 선생을 찬양해서 말하기를 인품이 뛰어나고 효도하며 친구 사이에 신의가 있고 경사에 두루 통했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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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055-940-3413)
최종수정일
2015-02-01 0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