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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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鄭庸)

본향은 진양이고 호는 중재(中齋)로서, 성품은 충효(忠孝)하고, 질직(質直)하며, 임진왜란 때 조카(姪)인 익주(翼周), 광주(光周)와 더불어 창의하여 송암 김면 장군 밑에서 공격장으로 활약하였는데, 김성일 초유사로부터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 공으로 문경 임시 현감으로 발령되었으나 사양하였습니다. 김면 장군이 별세한 후 진주병사 최경회와 황진 고종후 등과 결사 항전하였는데 성이 몰락하게 되니 공은 차리리 왜놈들에게 포로가 되느니 보다는 자결하겠다 하여 물에 투신하여 죽으니, 조카 두사람 또한 자결하였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 가문을 포상하였고 동계 정온 선생은 전기(傳記)를 써서 후세에 남겼으며, 황암사에서 제향하고 있습니다. (임진란 창의 참조)

유명개(劉名盖)

임진란 후 막판에 정유재란이 있었는데, 이 때 의령, 합천을 거친 왜의 대병은 운봉을 통하여 호남으로 통하여 침투하기 위하여 황석산성을 공격해 왔습니다. 거창ㆍ안의ㆍ합천등 삼읍군의 주민들은 총집결하여 황선산선을 지키고 있었는데,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 위기에 놓이게 되자, 공은 선영(조상의묘)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절한 후 곽준 현감과 더불어 죽었으며, 황엄사 병사에서 제향하고 있습니다. 종(從)인 은작(銀勺)과 물금(勿今) 또한 주인과 같이 전사했습니다.

오희남(吳希男)

본향은 함양 위천명 무월리 출생으로 부사 오적(오적)의 종질(종질)입니다. 소년 시절부터 문무에 재예가 뛰어난 분으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 수문장으로 왜적에게 결사, 항전하가다 6월 29일 진주성 함락과 더불어 전사하였습니다. 선무 원종공신 3등에 봉해지고 헌종 때에 병조참의가 증작되었습니다.

이성택(이성택)

공은 영조 4년 무신 반군 때 희길(희길)등 숨어 있는 반군장을 체포하여 법대로 처리하였기에 조정에서는 그 공을 찬양하였습니다.

전근(전근), 전우석(전우석)

무신년(영조 4년)에 정희량 등이 난을 일으켰을 때, 공은 글을 띄워서 모든 주민에게 창의를 촉구하고 군병을 모아서 적괴를 잡는데 공을 세웠습니다. 그 후 이조참판이 증직되었습니다. 전우석 또한 전근과 덜불어 공을 세웠기에 지형(지평)이 증직되었습니다. (무신란 창의 참조)

신병우(신병우)

본향은 거창, 호는 어천(어천)으로 공종 경오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수찬(수찬)에 올랐습니다. 갑신정변 때 입직(입직)으로 고종 황제의 파천을 시종 호위하여 무사케 하였으며, 난 후 낙안 군수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북상면 창성에서 귀래대를 짓고 여생을 조용히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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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055-940-3413)
최종수정일
2015-02-01 0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