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강을 했거나 시호를 받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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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천(葛川) 임훈( 林薰)선생

시호는 무엇이었습니까?

선생의 시호는 효간(孝簡)이었습니다. 시호는 왕이 내리는 것으로 밑에서 그 사람의 사적과, 시호 세 가지를 올리면 왕이 그것을 보고 그중 하나에 점을 찍습니다. 효간이란 효성스럽고 덕이(正直, 無邪) 높다는 뜻인 듯하며 철종 11년(1861)에 이조 판서로 정직되었습니다.

선생의 일대기를 요약해서 말해 봅시다.

  • 선생은 연산군 6년(1,500)에 안음현 갈천동(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 선생의 아버지인 석천공(石泉公)은 진사시에 합격한 분으로 선생의 스승이기도 하였습니다.
  • 41세 때 사마시(司馬試)에 2등으로 합격하였으며, 53세 때 덕유산 향적봉에 오르고 향적봉기를 지었습니다.
  • 54세 때 사직서 참봉을 제수 받았고 55세 때 집경전(集慶殿) 참봉으로 전직하였고 이후 제용감 전생시 참봉을 역임하였습니다. 65세 때는 명종(明宗)의 하명으로 효행 정문(旌門)이 세워졌습니다.
  • 67세 때는 전국 육현(六賢)으로 선발(1,566)되어 6품직인 언양현감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9월경에 사정전(思政殿)에서 왕에게 정심수신설(正心修身設)을 강론하였습니다.
  • 70세 때(선조 2년)에는 왕에게 치도(治道)를 진강하였습니다.
  • 74세 때는 광주 목사에 임명되어 가장 뛰어난 치적을 올렸고, 83세 때는 장예원판결사(정 3품)가 되었습니다.
  • 85세를 일기로 별세하니(1,584년 선조 17)선조대왕이 부의를 하사하였고, 용문서원에 배양되었으며 1,665년에는 송시열의 도움으로 문집이 간행되고 1,861년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871년에는 ‘효간공(孝簡公)’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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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055-940-3413)
최종수정일
2015-11-17 17: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