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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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金玄錫)

본관은 김녕이고 호는 여병재(如甁齋)로서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거창 현감을 역임했으며, 사육신과 더불어 그의 아버지 김문기(金文起)와 같이 순절했습니다. 고종 때 자현대부 이조 판서가 증직되었습니다.

신극종(愼克終), 신석현(愼錫顯), 신덕현(愼德顯), 신치근(愼致勤), 신광세(愼光世)

위 다섯 분을 창충사(彰忠祠) 오충(五忠)이라 칭합니다. 영조 4년 무신란이 일어나서 거창, 안의, 함양, 합천 등지가 완전히 반군에게 장악되고, 대부분의 민중 또한 반군에 가담되어 관군은 그야말로 그림자도찾기 힘들었고 현감(신정모) 역시 도망치고 없었습니다. 이때 이 분들 오충(五忠)은 현리(縣吏)로서 좌수인 이술원, 신명익 등과 함께 진양군 등 관군을 도와 반군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그 후 공조좌량 등으로 증직되었습니다.

배두필(裵斗弼), 배두원(裵斗元)

본향은 성산이며, 배두필의 호는 한죽재(寒竹齋)이고, 배두원의 호는 제남(濟南)입니다. 한죽재와 제남공은 당시 가조 일부리 장항에 살고 있었는데, 무신 반군이 일어나자 현감은 도망치고, 좌수가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창의하여 반군의 괴수를 생포하고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기에한죽재는 호조판서 제남공는 가선 대부로 증직되었습니다.

오세창(吳世昌)

본향은 해주이고 호는 금호(琴湖)입니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무신란을 당하여, 이인좌 일당이 서원을 함락시켜, 세상이 어지러울 때, 서원(西原)으로 달려가서 죽산(竹山)에서 반군을 괴멸시키고 적괴를 포박하여 공신녹권(功臣錄券)을 하사받았습니다. 그러나 금호공은 자신의 공로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여 가조 안금에서 여생을 보냈는데, 고종 때 병조판서로 증직되어 충의사에서 제향하고 있습니다.

여해달(呂海達), 남태정(南泰正), 김인상(金仁尙), 이우태(李遇泰)

여해달은 가북면 용암리 출신으로 지금도 그 곳에는 여해달 유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남태정, 김인상 등은 무신란 때 금어군(禁御軍)으로서 무신을 진압하고, 생포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이우태는 본향이 연안이고, 호는 화곡(和谷)으로 무신정변 때 창의해서 진양군의 선봉대가 되어 격문을 짓고, 무신을 생포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화곡 무신일기를 써서, 무신 관계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를 남겼습니다. 후에 참의로 증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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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055-940-3413)
최종수정일
2018-02-27 09:2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