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유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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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조에 유이태라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습니다. 왕조실록에 의하면 숙종 36년에 국왕의 병환으로 전국의 명의를 불러 진료하게 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유의원도 불려 가다가 전주에 이르러 병을 핑계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으므로 조정에서 물의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위천면 서마리에서 태어난 거창 사람입니다. 그가 지금 수승대 어귀에 있는 어나리 서당에서 글공부를 할 때의 일입니다. 유이태가 밤늦게 글공부를 하러 오갈 때면 웬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서 유혹을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마음을 굳게 다지고 그 아가씨를 본체만체하고 그냥 지나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달 밝은 밤에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여 척수대에 올라 중천의 달을 보고 있는데 또 그 아가씨가 나타나 단 한번만 입맞춤이라도 하여 달라고 애원을 하니 그는 그녀의 간절한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단 한번만 입맞춤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녀와의 접촉에서 더할 수 없는 황홀감과 달콤함을 실감하고 신비로운 향기에 도취되어 있는데 그녀의 혀 끝에서 감미로운 구슬이 굴러들어와 형용하기 어려운 쾌감에 젖을때면 구슬은 다시 그녀의 입으로 빨려 가고 이렇게 두 사람의 입으로 구슬이 오감을 거듭하는 동안 긴 애무 끝에 그녀는 작별을 고하고 사라졌습니다. 이같은 일이 연일 계속되어 유이태는 밤이면 그녀를 그리워하게 되고, 이러한 밤이 수십일 계속되는 동안 유이태의 안색은 점점 창백해지고 몸은 야위어 갔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서당훈장은 그에게 사연을 물으니 자신의 쇠약을 근심하던 그는 그 사유를 순순히 고했습니다. 고백을 들은 훈장은 심사숙고한 끝에 "그 구슬이 너의 입에 들어올 때 삼켜라. 만약, 그 구슬을 네가 삼키지 않으면 너는 반드시 죽게 된다."라고 일렀습니다.

그날 밤에도 예외없이 두 남녀의 밀회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문득 스승의 말씀이 떠올라 몇번인가 굴러 들어온 구슬을 눈을 딱 감고 꿀꺽 삼켰더니 웬일인지 그렇게도 아름다웠던 아가씨는 순식간에 비명을 지르면서 한 마리의 흰 여우가 되어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훈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다음날 뒷간에서 그 구슬을 찾아와 소중히 간직하라고 하였습니다. 구슬을 얻은 날부터 아가씨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그의 몸도 완연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유이태의 총명이 비상하게 늘었다는 일입니다. 한번 듣거나 본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천재가 되었고 이때에 그는 의서를 열심히 공부하여 의술의 대방가로서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되어 마침내 국왕의 병환에 부름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의 보배인 구슬이 온 데 간 데가 없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구슬을 잃고난 뒤부터는 그도 평범한 재주밖에 없게 되었고 기억력도 줄어서 마침내는 건망증까지 걸렸다고 합니다. 어느날 그의 며느리가 감기몸살에 걸렸는데 콩나물을 달여 먹이려던 것이 콩나물을 잊어버리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떠오르지 않아 "비녀나물 비녀나물 "이라고 하다가 며느리를 놓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지금 연극고등학교 뒷편 언덕에 유이태가 침을 놓았다고 하는 침대롱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유이태(劉以泰, 1652~1715) 선생은 거창 출신 실존 인물로 조선시대 홍역 전문치료서인 <마진방痲疹方>을 저술한 명의입니다.

참고로 소설과 드라마에서 허준의 스승으로 묘사된 유의태는 실존인물이 아니며 허준보다 백년 후에 태어난 거창 출신의 명의(名醫) '유이태'를 모델로 설정된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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